부서진 벤치의 부활

온 뜨락에 꽃이 가득하여 “온 뜰에 꽃”이란 정겨운 이름을 가진 공원이 있답니다.

찬 서리 내리는 겨울이 지나가고 이슬과 함께 따뜻한 봄을 맞이한 공원의 새벽을 깨우는 각종 꽃들이 저마다 가진 매력으로 아침을 기다리지요. 그러면 별 나비 친구들이 찾아와 꽃잎에 담긴 향기를 배달하면 공원은 푸름으로 빛나는 꽃동산이 되지요.

공원에는 곳곳에 많은 벤치가 있었어요.

벤치는 봄을 시작으로 해마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담기지요. 봄비와 햇살에 깨어난 꽃길을 걷다 엄마 무릎을 베개 삼아 잠든 아이들의 고른 숨소리와 기타 멜로디에 담긴 젊은이들의 여름날 열정 그리고 어른들의 지나간 풍요로운 가을 이야기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벤치에 차곡차곡 쌓이면 공원의 벤치는 사람들에게 쉼과 기쁨을 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다 찬바람이 불면 긴 겨울잠을 자지요. 그런데 외진 곳에 있어도 없는 것 같은 외로운 벤치 하나가 있었어요.

올해도 어느 해와 같이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나래 편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나누는 이야기와 노랫소리 그리고 뛰어 노는 아이들의 넘치는 기운과 해맑은 모습이 봄바람 타고 전해지면 “하나님은 왜! 나를 벤치로 만들었을까?” 외로운 벤치는 해마다 하는 말을 중얼거려도 실망은 하지 않았어요. “여름이 오면 사람들은 시원한 그늘을 좋아하니까 이번 여름에는 틀림없이 나를 찾아올 거야.” 하며 외로운 벤치는 기다렸어요. 하지만 여름과 가을에도 외로운 벤치를 찾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리고 겨울이 왔어요.

겨울날 매서운 추위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휙휙 건들바람 소리만 들리는 공원은 긴 침묵에 잠겨서요. 그러나 하늘에서 귀한 선물이 내려오면 공원은 하얀 나라로 변하고 벤치엔 눈이 소복소복 쌓이지요. “뽀드득뽀드득” “사각사각” 발자국 소리가 공원을 채우지요. 사람들은 눈을 맞으며 계절의 신비함을 느끼며 차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벤치에 쌓인 눈을 쓸어내고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눈싸움을 하며 즐거워했어요. 하지만 외로운 벤치를 찾는 사람은 없었어요.

다시 찾아온 봄도 지나고 어느 여름날 깜깜한 밤

억수같이 내리는 요란한 빗방울 소리를 몰아내는 뇌성 소리와 어둠을 가르는 빛이 하늘에서 번쩍거렸어요.

“꽝”

큰 소리와 함께 벼락이 외로운 벤치 위에 떨어졌어요. 벤치는 조각조각 부서져버렸어요.

“이제 정말 끝이야. 벤치는 죽었어.” 조각난 벤치는 빗물에 떠내려가 사라지기를 원했어요. 하지만 검게 탄 조각으로 여기저기 어지럽게 남아 있었어요.

“조심조심”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늦은 오후 형체를 잃어버린 벤치가 있는 곳으로 들려오는 목소리.

“여보! 내가 공원을 다 둘러보았어요. 여기가 따가운 햇볕을 가려주는 시원한 그늘이 있고 외진 곳이라 꽃가루가 날아오지 않아요. 우리 상아가 앉을 만한 벤치가 있어 나들이하기 좋은 곳 같아요.”

“수고하셨어요.”

엄마와 아빠 같은 사람이 얼굴을 다 가릴 만큼 커다란 마스크를 한 상아라는 아이의 손을 잡고 부서진 벤치가 있는 곳으로 왔어요.

“어! 그런데 벤치가 부서져 버렸네. 며칠 전 밤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번개가 번쩍이더니 벼락이 벤치에 떨어졌구나. 어쩌지!” 아이 아빠는 당황하면서 아이를 바라보았어요.

“아가야! 이리 오렴”

아이 엄마는 그늘진 곳에 돗자리를 펴며 말했어요. 아이는 코와 입을 가린 커다란 마스크를 벗었어요. 아이는 희다 못해 파란 실핏줄 보이는 창백한 얼굴의 소년이었어요. 돗자리에 앉은 아이는 “휴”하고 긴 숨을 내쉬며 높은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아이 엄마 아빠 눈에 눈물이 고였어요.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콜록콜록” 아이가 기침을 하자 놀란 엄마는 아이에게 얼른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려주며 “상아 아빠! 이제 집으로 돌아가요.” “알았어요. 상아야 집으로 갈까.”

상아 가족이 돌아간 후 부서진 벤치는 “하나님! 정말 너무해요. 부서지고 난 후 사람이 오면 뭐 해요. 이젠 벤치도 아닌 걸요.” 하며 마구마구 화를 내었어요.

여러 날이 지나갔어요.

“조심조심” 상아 가족이 다시 오고 있었어요.

상아는 꽃가루와 햇볕 알레르기가 있었고 가는 바람에도 기침을 심하게 해 숨을 잘 쉴 수 없는 병을 앓고 있었어요. 그래서 상아는 학교 입학만 하고 갈 수 없어 집에서 공부하고 나들이 하는 곳은 병원뿐이었어요. 상아 아빠는 상아에게 맑은 공기와 높은 하늘을 보여주고 싶어 사람의 발걸음이 뜸한 공원 외진 곳에 상아와 온 것이었어요. 처음 올 때와 같은 모습으로 온 상아 가족은 이후부터 자주 부서진 벤치가 있는 곳에 찾아와 잠시 머물다 돌아가곤 했어요. 상아는 처음 올 때보다 몸이 좋아졌는지 무표정한 하얀 얼굴의 미소가 아직 어눌했지만 살구꽃 모습도 있었어요. 부서진 벤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상아는 “엄마! 부서진 벤치가 꼭 나 같아요.”라고 했어요. 깜짝 놀란 상아 엄마 “여보! 부서진 벤치를 치울까요.” 말하자 “엄마 나 부서진 벤치로 만들고 싶은 것이 있어요.” 상아 말에 “그래그래 무엇이든 만들어 보렴.” 상아 아빠는 검게 타 흩어진 벤치 조각들을 모으며 말했어요. 그리고 모은 조각난 벤치를 가지고 갔어요. 이제 외로운 벤치는 사라지고 있던 곳은 텅 빈 곳이 되어 버렸어요. 그리고 상아 가족도 오지 않았어요.

집으로 돌아온 상아는 검게 그을린 벤치 조각을 날카로운 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어요. 부서진 벤치 조각은 상아의 여린 손이 움직일 때마다 검은 그을림은 벗겨지고 나무의 속살이 드러났어요. 벼락을 맞아 더욱 단단해진 벤치 조각을 다루는 상아 이마에 땀이 방울방울 맺히고 창백한 얼굴은 생긋한 미소로 깨어나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바라보는 상아 엄마 아빠 잡은 손등에 감사의 눈물이 떨어졌어요. 상아가 부서진 벤치 조각으로 만든 것은 작은 나무 십자가였어요. 상아가 병원에 치료 받으러 가는 날 상아 엄마는 상아가 만든 작은 나무 십자가 하나하나를 예쁜 줄로 목걸이를 만들었어요. 병원에는 상아처럼 무서운 병과 싸우는 쪼고미 친구들이 있었어요. 상아는 쪼고미 친구들과 함께 학교 운동장을 달리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작은 나무 십자가 목걸이를 친구들과 나누었어요.

나무 십자가로 부활한 부서진 벤치는 “하나님! 상아 가족을 보내 주심을 감사드려요. 난 외로움과 아픔을 잘 알아요. 아이들에게 있는 외로움과 아픔은 나에게 주고 아이들이 승리의 깃발을 달고 마음껏 달리게 해 주세요. 그리고 지난번 화낸 것 용서해 주세요.” 기도를 했어요.

신기하게도 부서진 벤치 조각으로 작은 나무 십자가를 만든 상아도 나무 십자가 목걸이를 선물 받은 친구들도 병이 다 나은 것은 아니지만 학교는 갈 수 있게 되었어요. 상아는 친구들과 약속을 했어요. 모든 병과 싸워 이겨 함께 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 하자고.

상아 엄마와 아빠는 부서진 벤치가 있던 공원 외진 곳에 깔깔거리는 아이도 소꿉장난하는 아이도 앉아 쉴 수 있도록 모양과 크기가 각기 다른 예쁘고 튼튼한 벤치 일곱을 만들어 빈 공간을 채웠어요.


코멘트

“부서진 벤치의 부활”에 대한 2개 응답

  1. 부서진 벤치가 새로운 의미로 다시 쓰이는 과정이 너무 인상 깊었습니다.
    따뜻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2. 너무 따뜻한 동화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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