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발길이 뜸한 산. 매끄럽고 색이 고운 돌이 모여 돌밭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굉음 소리를 내는 자동차로 봄맞이 한 숲을 헤집고 나타난 사람들이 돌밭 돌들을 가져가며 큰 돌덩이 하나를 보고 “이 못난이 돌덩이는 공원에 어울리지 않아” 하며 가버리자 덩그러니 혼자 남은 돌덩이.
텅 빈 돌밭에 온 할아버지 한 분이 돌덩이에게 “안녕” 하며 인사를 했습니다. 놀란 돌덩이.
“할아버지! 누구세요. 그리고 저 아세요.”
“난 여기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 사는 사람이란다. 여기서 돌을 가지고 온 사람이 네 이야기를 해 주었어.”
“할아버지! 저도 사람들이 말한 공원에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못생겼다 놀리고는 친구들만 데려가 버렸어요.”
“아니야, 너는 못난 돌덩이가 아니라 멋진 바위야.”
“정말이세요. 멋진 바위 너무 좋아요. 근데 할아버지께서는 여길 왜 왔어요?”
“네 몸에 망치와 정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 왔단다. 도와줄 수 있겠니?”
“할아버지께서 친구가 되어 주시면 도와줄게요.”
“그래, 우리 서로 좋은 친구가 되자.”
할아버지는 돌덩이를 쓰담쓰담 하면서 말했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돌덩이는
“할아버지! 어떤 조각그림을 그리려 하세요?”
“엄마 얼굴을 그리려고 한단다.”
“엄마 얼굴!”
돌덩이는 할아버지가 엄마라는 말이 너무 우스워 놀라자
“우습지. 할아버지가 어머님이라 하지 않고 엄마라고 하니 그래 우스울 거야. 나의 고향은 북쪽이란다. 어릴 때 아버님을 여의고 어머님과 둘이 살고 있었어. 그런데 전쟁이 나서 모든 사람들이 피난 갈 때 어머님은 집을 지켜야 된다며 주먹밥을 보자기에 싸주시면서 전쟁이 끝나면 만나자며 나의 등을 떠밀어 난 피난 가는 사람들과 남쪽으로 왔단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도 고향으로 갈 수 없게 되어 나에겐 어릴 적 엄마 얼굴만 남아 있어.”
라고 말하는 할아버지 입술은 떨리고, 지그시 감은 눈 사이로 눈물이 고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다시 말을 이어 갔습니다.
“하염없이 흘러간 시간과 함께 엄마 얼굴이 사라지려고 해. 그래서 변하지 않는 너에게 엄마 얼굴을 그리려고 하는 거야.”
“할아버지, 마음껏 그리세요.”
“그런데 망치와 정으로 조각그림을 그리면 네 몸에 상처를 내어야만 해. 많이 아플 것인데…….”
할아버지는 미안한 마음에 말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괜찮아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그날부터 망치와 정을 가지고 돌덩이 몸에 조각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빠르고 강하게 때로는 약하고 부드럽게 쪼아가며 조각그림을 그려 나갔습니다. 그때마다 돌덩이 몸이 잔잔히 떨어져 나갈 때 마다 아픔은 더해져 갔습니다. 그래도 돌덩이는 친구인 할아버지를 위해 참을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엄마 얼굴은 어떤 모습이세요?”
할아버지는 하늘을 한 번 보고
“엄마 얼굴은 미소와 눈물 그리고 언제나 머물 수 있는 고향이란다. 내가 어릴 적 도담도담 하지 못해 무슨 병인 줄도 모른 체 많이 아팠지. 몸은 불덩이 같았지만 추워서 이불을 둘둘 두르고 있는 나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병이 전염될까 봐 아무도 우리 집에 오지 않았어. 또 아이는 죽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엄마의 마음을 찢어지게 했지만 엄마는 아픈 나를 품에 안고 기도하며 ‘우리 아가는 건강해질 거야’ 하며 찬 수건으로 펄펄 끓는 내 머리를 식혀 주며 바라보는 그 온화한 미소는 아픈 날 건강하게 해 주었단다.
할아버지가 살아오는 동안 너무 힘들어 주저 앉고 싶을 때 엄마의 기도와 미소는 언제나 내 마음에 머물며 ‘넌 할 수 있어’라고 용기를 주었단다.
또 어떤 날 배가 너무 고파 남의 참외밭에 들어가 참외 하나를 몰래 따 먹었지. 그걸 아신 엄마는 회초리로 나의 종아리를 때리면서 많은 눈물을 흘리셨단다. 그 눈물은 할아버지가 살아가는 동안 바른 길로 가지 않고 옆길로 갈 때 바른 자리에 머물게 하는 회초리가 되어 주었지.”
라고 말할 때 할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입가에는 미소가 보였습니다. 그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침이면 돌덩이에게 와 조각그림을 그리고 저녁이면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조각그림은 나뭇잎이 울긋불긋 단풍이 들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무거운 망치와 날카로운 정으로 조각그림을 그리는 할아버지는 건강해 보였지만 가끔은 휘청거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각그림 그리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단풍이 밤 서리에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돌덩이에게 기쁨에 겨운 얼굴로
“이제 그림을 다 그렸어. 그동안 많이 아팠을 것인데 잘 참아주어 고마워.”
하며 돌덩이에 새겨진 엄마 얼굴을 보며 “엄마”라고 아주 작은 소리로 불러 보았습니다. 돌덩이는 못 들은 척
“할아버지! 외로운 저에게 친구가 되어 주어 고마웠어요.”
할아버지는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커다란 거울을 가지고 다시 와 네 몸에 그려진 할아버지 엄마 얼굴을 보여 줄게.”
약속하며 돌덩이를 떠나갔습니다. 돌덩이는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봄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은 왔지만 할아버지는 오질 않았습니다. 돌덩이는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밤꽃 향기가 온 산에 가득한 날, 아저씨 한 분이 돌덩이 앞에 서서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 커다란 거울로 돌덩이에게 조각그림을 보여 주었습니다. 돌덩이는 자기 몸에 그려진 할아버지 엄마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할아버지 엄마의 미소는 할아버지가 웃을 때 모습과 같았습니다. 할아버지 엄마 눈에 고인 눈물은 할아버지 눈에 눈물과 같았습니다.
아저씨는 돌덩이에게
“너에게 조각그림을 그린 분은 나의 아버님이란다. 아버님은 지난겨울 너와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셨어.”
돌덩이는 할아버지가 보고 싶었지만 기뻤습니다. 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 그리운 엄마와 함께 있을 것이고 또 새로운 친구를 보내 주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친구 아저씨도 어떤 때는 돌덩이에 그려진 조각그림이 쉼터가 되고 어떤 때는 지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아저씨는 조각그림을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입가의 미소도 눈에 눈물도 점점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돌덩이에게 새 친구도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 아이는 할아버지 손자, 내 아들이야.”
라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돌덩이는 저 아이도 어른이 되면 자기 몸에 그려진 조각그림을 닮을 것임을 알고 싱긋 웃었습니다.
그 후 아저씨는 부인과 두 딸 그리고 아들 온 가족이 함께 돌덩이가 있는 곳을 작은 공원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그 공원에 못난이 돌덩이는 할아버지 말처럼 멋진 바위가 되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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